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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소재로 한 만우절 농담

sun teacher 2008. 10. 27. 14:51

미국에서는 진지한 잡지에서도 만우절 농담을 싣는 일이 있다. 물론 보도 기사를 농담으로 작성하거나, 학술지에서 엉터리 논문을 싣거나 하는 일은 없고(주 1)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잡지의 칼럼이나 기고문에 국한되지만, 이런 것이 유쾌한 장난으로 용인되는 분위기이며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혼란이나 피해를 주지 않으면 해명이나 사과문도 싣지 않는다.
※주 1: 반면 만우절이 아닌데도 패러디와 말장난으로 점철된 논문이 사회과학 학술지에 실린 적 있다. 이 사건이 자연과학계와 인문학계의 대립으로 유명한 '지적 사기' 논쟁의 발단이 되었다.

   수학을 소재로 한 만우절 농담으로는 미국의 저명한 수학 저술가이자 과학비평가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한 것이 잘 알려졌다. 가드너는 월간 대중 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1956년부터 1986년까지 "Mathematical Games"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는데, 1975년 4월호 칼럼(주 2)에서 그는 이제껏 사람들이 잘 몰랐지만 놀랄 만한 발견들이 있다고 하며 라마누잔 상수(Ramanujan constant) eπ√163이 자연수라는 사실을 인도 출신 수학자 라마누잔(Srinivasa Aiyanger Ramanujan, 1887-1920)이 1914년 증명했다고 서술하는가 하면 4색문제(Four Color Problem)의 반례라면서 복잡한 지도를 내놓았다.
※주 2: Martin Gardner, "Mathematical Games: Six Sensational Discoveries that Somehow or Another Have Escaped Public Attention," Scientific American 232, pp. 127-131, Apr. 1975.


   칼럼 전체로 본다면 만우절 농담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충분한 글이었으나, 가드너의 유명세 탓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인지도 탓인지, 가드너가 그 해 7월호 칼럼에서 4월호 칼럼이 만우절 농담이었음을 해명한 뒤에도 가드너가 한 만우절 농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라마누잔 상수가 자연수라고 언급하며 가드너가 쓴 칼럼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하는 일도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사람들 사이에 돌고 돌면서 사실처럼 알려지거나, 발화자의 권위 때문에 의심스러운 수학적 진술을 확인하지 않고 일단 믿어 버리면서 생겨난 민간수학(folk-mathematics)적 진술이 문제가 되는 본보기로 꼽을 수 있다.


   eπ√163 = 262537412640768743.999999999999250……은 12번째 자리까지가 9라서 언뜻 보면 자연수로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13번째 자리가 2이고 그 이후로는 불규칙하게 전개되며, 무리수라는 것도 증명되어 있다. 이처럼 정수에 가까운 무리수는 보형함수(modular function)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몇 개가 발견되었고, 그 중에는 eπ√58처럼 실제로 라마누잔이 발견한 것도 있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eπ√163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가드너의 칼럼에서도 원래는 이름이 없이 eπ√163라고 표시했다. 라마누잔 상수라는 이름은 가드너의 칼럼 때문에 이 상수가 널리 알려지면서 붙여졌다.


   이런 농담이 현역 수학자들에게도 통한 것은 어떤 수가 무리수인가 유리수인가, 나아가 대수적 수인가 초월수인가를 판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관계있다. (2√2)√2처럼 무리수무리수 형태의 수라도 유리수가 되는 것도 있기에,(주 3) 분명히 증명되지 않았다면(또는 그 사실을 모른다면) eπ√163가 유리수라는 가정도 무조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 3: 2√2는 무리수일 뿐 아니라 초월수라는 것이 러시아 수학자 겔폰드(Aleksandr Osipovich Gelfond, 1906-1968)가 증명한 겔폰드 정리에 따라 나온다.

  

   참고로 더 단순한―그러나 역시 컴퓨터를 사용한―증명은 1996년에 로버트슨(Neil Robertson), 샌더스(Daniel P. Sanders), 시모어(Paul Seymour), 토머스(Robin Thomas)가 발표했다.(주 4) 컴퓨터를 이용한 증명은 지도를 단순한 유형으로 분류한 후 하나하나 색칠을 해서 확인하는 것과 같기에, 이와는 다른 연역적인 증명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학자도 있으나 아직 그런 증명은 나오지 않았다.
※주 4: 증명 내용은 아래 웹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www.math.gatech.edu/~thomas/FC/fourcolor.html

 

   수학에 얽힌 만우절 농담을 공공연히 발표한 또다른 사례로는 ≪현대 수학의 여행자≫(The Mathematical Tourist: Snapshots of Modern Mathematics. 한국어판: 김인수·주형관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8), ≪진리의 섬≫(The Island of Truth. 한국어판: 윤만식 옮김, 웅진닷컴, 1993) 같은 책으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대중 수학 저술가 이바스 피터슨(Ivars Peterson)의 칼럼이 있다.


   피터슨은 미국수학협회(The 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 MAA) 홈페이지에 연재중인 칼럼 <이바스 피터슨의 수학나라>(Ivars Peterson's Mathland)(주 5) 1996년 4월 1일자(주 6)에서 모두 13권이 전해지고 있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Euclid's Elements)이 사실은 14권이었다는 내용을 썼다.
※주 5: 현재는 <이바스 피터슨의 수학여행>(Ivars Peterson's MathTrek)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 6: http://www.maa.org/mathland/mathland_4_1.html


   그에 따르면 고대 서양언어 연구재단(Foundation for Old Occidental Languages)(주 7)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유클리드의 원고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기하학원론≫ 제14권에 상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평행선 공리 대신 다른 공리를 넣은 공리계, 즉 오늘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불리는 기하 체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그리스 학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진 통념이었고, 유클리드는 이를 종합한 것뿐이다."는 바나나 주립대학교(Banana State University)(주 8) 수학 교수의 의견까지 인용하며, 모두가 유클리드 기하학이므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용어는 사어(死語)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주 7: 대문자로 된 각 단어 첫 문자에 주목하라.
※주 8: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미국 지도에서 바나나주(州)가 있나 없나 찾아보라.


   이 밖에도 칼럼에서는 ≪기하학원론≫ 제14권에서 프랙탈 기하학과 같은 몇몇 현대 수학 분야의 원형격인 발상을 제시했으며, 오늘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알려진 문제에 관해 "놀라운 증명을 구했으나 페이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실을 수 없다."는 코멘트를 남겼다고 서술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거짓말이라는 티를 너무 뻔하게 낸 이 칼럼을 보며 유클리드 시대에 정말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이미 증명되었다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피터슨도 후속 칼럼에서 사과나 해명을 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1. http://mathworld.wolfram.com/Four-ColorTheorem.html
2. http://mathworld.wolfram.com/RamanujanConstant.html
3. http://www.cs.ucla.edu/~klinger/nmath/value_e.html
4. http://mathforum.org/wagon/fall97/p840.html
5. http://www.geocities.com/titus_piezas/Ramanujan_a.htm
6. http://www-history.mcs.st-and.ac.uk (세인트 앤드루즈 대학교 수학사 홈페이지: 수학자 인명, 생몰연대, 업적 등 인적사항 참조)
7. 키스 데블린, 허민 옮김, ≪수학: 새로운 황금시대≫(경문수학산책 2), 경문사, 1999.
8. 박부성, ≪천재들의 수학 노트≫, 향연, 2004.
9. Richard Courant and Hervert Robbins, revised by Ian Stewart, What Is Mathematics?, 2nd edition, Oxford Univ. Press, 1996.